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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제목 2017년도 선정작: 공부와 일,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
작성자
작성일자 2018-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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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와 일,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

사회복지학과 15학번 정지은   






    공부와 일,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학교를 위해 내로라하는 큰 회사를 퇴사하겠다고 말했을 때, 부모님의 만류도 있었다. 일과 학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도 못 잡는다는 경고도 잇따랐다.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한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미 대학을 졸업한 동갑내기들을 따라잡기에는 늦은 게 아닐까, 고등학교에서 같은 무역학과를 다녔던 친구들과 함께 경영학과로 가는 편이 더 수월할까? 이왕 학교를 간다면, 내가 하고 싶어하는 분야의 공부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내 결정을 들은 친구들은 날 말리기는커녕 어울린다고 말해주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지금, 둘 다 힘들지만 둘 다 즐겁다.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한 건 예전부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봉사활동이라면 굳이 공부를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 십여년 전, 필리핀으로 선교 봉사를 간 적이 있었다. 할 줄 아는 건 얼마 없어서 아이들을 돌보는 등 잡다한 일들을 맡았다. 그때 기억에 남는 건 필리핀의 낙후된 환경보다 필리핀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었다. 아이들은 고작 나 한명만으로도 행복해했고, 꾸밈없이 솔직한 그 미소에 내가 되려 더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나와 동갑내기지만 임신해서 산처럼 부풀어오른 배를 끌어안은 필리핀 여자아이도 부끄러워하거나 의심하는 기색 없이 환하게 웃었고, 도움에 기뻐했다. 행복하다는 듯 미소를 짓는 여자아이의 모습에 나 역시 가슴이 뛰었다. 어쩌면 돕는다는 건, 도움을 받는 이들이든 도움을 주는 사람이든 누구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게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굳이 학교에 출석해야 하는 명지대학교를 택한 건, 온라인 강의로 수월하게 학위를 따는 대신 체계적으로 배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귀중한 주말을 하루 빼고 여가 시간을 과제에 쓰는 일이 있더라도, 누군가를 돕는 것처럼 공부에서도 요령을 피워서는 안 되는 법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도 한다는 것, 분명 토끼 두 마리를 잡는 건 힘든 일이다. 힘들다고 해서 포기해버리면 결국 한 마리도 잡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사각지대의 그늘
  할아버지는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한 시간 가량 쓰러져 계셨다고 했다. 한 행인이 쓰러진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급히 이송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여름의 햇빛이 얼마나 뜨거웠을까, 할아버지에게는 그 햇빛 아래에서 그늘을 향해 움직일 기운조차 없었다. 할아버지는 혼자 살고 계셨다. 한창 직장에서 일하던 가족들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었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여태껏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지만,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복지라는 시원한 그늘이 너무나도 멀고, 쨍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 움직이기에는 무력할 수 있다. 나의 할아버지처럼.
  한 밥을 먹기 힘든 노인에게 직접 밥을 먹여주는 게 노인 복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수님들의 말씀과 실습을 겪으면서 기존 내가 믿던 것과 실제 사이에 많은 게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노인 복지란 아이들과 사뭇 다르고, 더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어린아이들이 배우는 건 그들이 이전에는 할 줄 몰랐던 것이지만, 노인들이 배우는 건 그들이 이전에 할 줄 알았던 것들이다. 밥을 먹는 것 역시 그렇다. 수저를 쥐고 젓가락을 드는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면, 포기해 버리게 된다. 내 역할은 다시 배울 수 있게끔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다시 수저를 쥐고 젓가락을 드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하고, 그러면서 노화로 쇠약해진 몸을 받아들이고 이겨낼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다. 물론 직접 먹여드리는 편이 시간이나 수고도 덜할 것이다. 하지만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그야말로 진정한 도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과연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도울 수 있을까? 아무리 교수님이 열심히 가르쳐 주신다 해도, 실전은 배우고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의지를 가지고 끈기 있게 달려든다면, 결국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게 된다. 내성적인 성격인지라 3년 전만 해도 학교 생활은 막연하고 두렵기만 했다. 급기야 다른 전공이라도 고등학교 친구를 따라 가는 편이 낫지 않았을지 고민이 들기도 했다. 그런 고민을 가진 사람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학과 특성상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하다 보니 행사나 장기자랑에 나서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매년 12월마다 열리는, 사회복지학과만의 고유한 행사인 '사복인의 밤'에서는 각 기수별로 장기자랑을 준비해야 했다. 연령대가 높은 축에 속하는 어르신들은 남들 앞에서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걸 부끄러워 하셨다. 하지만 사회복지학과 15학번을 대표하는 장기자랑 무대에서 더 잘한다는 이유로 일부만 나오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나이와 경험에서 차이가 난다 해도,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함께 노력하는 동료였다. 수차례 설득한 끝에 같이 '징글벨'에 맞춰 춤추기로 했다. 다들 일하시는 분이다 보니 단체 연습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징글벨'의 한 소절이라도 제대로 출 수 있을지 막막했지만, 결과가 어찌 되든 지금은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연습을 빠진 분들에게 춤 동영상을 찍어보내기도 하고 단체로 맞춰 쓸 빨간 산타 모자 사진을 메신저에 올리기도 하면서 격려하고 확신을 드리려고 노력했다. 마침내 우리는 '사복인의 밤' 무대에 무사히 올라 징글벨에 맞춰 춤을 출 수 있었다.
 
    원시와 근시
  동기 중 제일 나이가 많은 분은 학교를 졸업한 지 오십년이 훌쩍 넘었다고 했다. 학교를 오는 일이나 새로운 공부를 하는 것이나 다 재미있지만, 힘든 걸 하나 콕 짚어 말한다면 바로 영어라고 했다. 종종 그런 분들을 도와드렸지만, 나는 한번도 귀찮다거나 내가 무작정 돕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 또래의 친구들이나 나는 미래는 너무나도 멀고 까마득하다며 조바심을 내게 마련이다. 앞으로 뭘 하고 살지,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종종 불안해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안도감과 함께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분들이 바로 나와 동기지만, 나의 인생 선배이신 분들이었다. 게다가 바로 앞에 닥친 시험이며 레포트에 난감해하시면서도 포기하는 일 없이 노력하는 모습도 배울 점이 많았다. 나 역시 젊은 축이라지만 시험만 앞두면 입이 바짝 마르는데, 나보다 더 불리한 위치에 있을 분들은 어떻게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수 있을까? 단지 공부하러 온다면 학원이나 사이버대학에 가도 될 것이다. 명지대에 온다는 것, 사회복지학과를 택한다는 것은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공부를 계속 해나갈 수 있는 기반을 단단히 쌓는 것이기도 하다. 혼자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다 보면 지치고 외로워지게 마련이다. 혹여 그만두고 싶어질 때, 붙잡아 주는 사람이 없다면 누구도 졸업까지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수차례 번민과 다짐을 번복한 선배들의 조언과 같은 동기들의 응원은, 막막하고 힘든 와중에도 버틸 수 있는 활력소가 되어준다. 그렇게 나는 삼학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