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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제목 2017년도 선정작: 공감을 위하여
작성자
작성일자 2018-08-16
첨부파일

공감을 위하여

사회복지학과 17학번 박재현   





    공감을 위하여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던 때는 사회복지사가 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나는 자동차건설기기 전공이었고 사람을 대하는 것보다는 기계를 다루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게 터닝 포인트는 우연하게 찾아왔다. 19살이 되어 취업준비를 하다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인턴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던 건 사회복지가 국민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소중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는 데에 있다. 당연히 드려야 할 복지를 받으시면서도 우리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뿌듯함과 만족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정직원 공고가 났고, 운이 좋게도 나는 그 길을 통해 직원이 되었다. 지금은 주로 65세 이상의 어르신들 중 일상생활이 힘드신 분들을 찾아뵙고 필요한 지원을 요청하는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내게 젊을 때 이룰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을 빠르게 해냈다고 했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내가 얼마나 부족한 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공단의 사회복지보건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다른 직원과는 달랐다. 전문적 지식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건 단순히 일을 이해 못 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문제는 공감이었다. 복지가 필요하신 분들에게 필요한 다방면의 공감을 하는 데에 자신이 없었다. 사람을 대하는 일이기 때문에 마음을 먼저 살펴야 하는데 사태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해 업무를 정말 일적으로만 처리해야만 했다. 나는 시야를 넓히고 싶었다. 굳이 공부가 더 필요하냐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나로선 공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학력에 대한 욕심보다 발전에 대한 욕심이 선택한 대학이었다.
 
 
    스트레스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어. 대학 공부를 너무 우습게 봤던 것일까. 처음 학교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학습과 일을 병행하는 것도 모자라 과대표까지 맡게 되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한 마디로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았다. 큰맘 먹고 대학에 왔으니 공부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하필 회사 인력이 많이 감소하는 바람에 일이 굉장히 많이 늘었다. 또 과대표를 하며 사람들과 소통은 사회복지사로서의 그것과는 또 달랐다. 참석률이 저조한 터라 사람들을 설득해서 행사를 마련하고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일을 하다가도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하다가도 학생회 일을 해 내야 했다. 의욕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시절이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한 번은 학교생활을 괜히 시작한 것인지, 그냥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때의 나를 지탱해 주던 것이 전문성에 대한 나의 열정과 회사 측의 배려였다. 그 바쁜 와중에도 나는 수업이 있는 수요일에는 1시간 일찍 퇴근해서 학교에 올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다시금 되새기자 전공과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교양 수업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얼른 전공을 심화시키고 싶은 마음에 교양은 의례적인 관례로 생각하고 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교양 수업을 들으며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 나는 사회생활을 또 한 번 배울 수 있었다. 사회인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내게 다양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회사 이야기는 너무나 흥미로웠다. 만약 현실에 안주하고 회사만 다녔다면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 했을지도 몰랐다. 사회에 대해 배운다는 생각을 하니 부담스러웠던 과대표 생활도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그건 결국 책임감을 기르는 훈련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할 나로서는 꼭 필요한 학습과정. 어쩌면 책을 보며 지식을 익히는 것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한 학기가 지나니 이제야 숨을 좀 돌리고 있다. 한 때 후회했던 선택들이 나를 옳은 길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요즘이다.
 
 
    청춘입니다
  학교에 입학을 했을 때 가장 마음에 걸렸던 건 쑥스럽지만 ‘대학생다운 생활’이었다. 대학에 다닌 친구들에게 얼마나 많은 조언을 들었는지 모른다. 아마 캠퍼스 생활의 낭만을 놓치지 싫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친구들은 과대표만은 반드시 피하라고 거듭 조언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대표를 하게 된 지금 생각을 해 보면 왜 그런 조언을 했는지 알 것도 같다. 잘 하기도 힘들뿐더러 못 하면 티가 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왕 하게 된 거 최선을 다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학생회비를 운영하고 과잠바를 만들고, 공지를 돌리는 일을 하면서 사무와 소통을 동시에 배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축제 때 주점을 열었던 일이었다. 축제기간 내내 주점을 준비하고 선배님들과 함께 서빙을 하고, 밤이 새로록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놀았다. 그러다가 한 순간, 말로만 듣던 대학 축제 한 가운데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20대가 되기도 전에 일을 하면서 5년간 잠시 잊고 있었던 단어. 청춘이 뭔지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남은 대학생활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절대 잊지 못 할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