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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제목 2017년도 선정작: 푸쉬업, 그리고 친구
작성자
작성일자 2018-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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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업, 그리고 친구

사회복지학과 17학번 김명숙   







    일단 돌진!
  시작은 지나가다가 무심코 보게 된 광고였다. 상업고등학교에서 나름 공부 실력을 뽐냈지만, 대학에는 가지 않고 바로 취업을 했다. 내 선택이었고 후회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만난 동네 엄마들 대부분이 대학을 졸업했다는 걸 알게 되자 새삼 눈치를 보게 되었다. 같은 대학교끼리 뭉치거나 나로서는 한참 생소한 것을 이야기하는데, 좀처럼 끼어들 수 없었다. 좀 분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내심 포기하고 있었다. 만약 이십대로 다시 돌아가면 대학교에 꼭 가겠다고, 헛된 바람이나 가져볼 뿐이었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도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있다니,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결심하자마자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우선 지원서류를 준비해야 했다. 마침 나는 동생이 사는 인도네시아에 있었다. 해외인 마당에 어떻게 학교에 지원 서류를 내겠는가, 마감일도 얼마 안 남았는데. 보통은 이 즈음이면 포기할만하다고 했지만, 나는 남편에게 지원 서류를 내야 한다고 말을 꺼냈다. 가정과 일에나 신경을 쓰는 편이 어떻겠냐며 핀잔을 주는 대신, 남편은 묵묵히 서류에 내 사진을 붙이고 접수까지 완벽하게 해주었다. 내게 남은 건 면접 뿐이었고, 나는 서둘러 면접 날짜에 맞춰 귀국을 준비했다.
  남편이 하는 사업을 돕다 보니 어느 정도 짬이야 낼 수 있었지만, 가정이나 경제적 부담이야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맏이지만 아직 초등학교 6학년밖에 되지 않은 딸이 울음을 터뜨리며 힘들다고 할 때도, 마음이 미어졌다. 고액의 학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공부를 쉬거나 그만둬야 겠다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았다. 딸들은 속상해했지만, 정작 한번 울거나 화를 낸 다음에는 오히려 후련한 표정이었다. 박보검을 본 적이 있냐고 묻기도 했다. 아마 엄마가 영어며 시험에 힘들다고 호소하면서도 끝내 책을 놓지 못하는 모습에서, 엄마는 한번 결정하면 저돌적으로 돌진할 뿐 좀처럼 멈추는 일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푸시업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잘 외워지지도 않는 글을 몇번씩이고 읽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 힘든 와중에도 멈추기보다는 헐레벌떡 달릴 수 있었던 건 교수님들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보통 대학생들보다 나이가 많다 보니 교수님들이 무작정 쉽게 가르치거나 조금 야유회 같은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정말 쓸모없는 걱정이었다. 일년에 한번 들출까 말까한 몇 백 페이지가 넘는 책들이 매주 몇권씩 턱턱 책상에 쌓였고, 레포트를 써야 했고, 영어 단어며 한뼘보다 긴 지문을 달달 외워야 했다. 게다가 뉴스에서 전문가들이 할 법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험에 나온다고 말씀하시는 교수님의 말을 듣는 순간 어안이벙벙해졌다. 교수님들은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 다른 20대 대학생들보다 공부 욕심이 많은 분들이니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정한 격려와 함께 거침없는 푸시업이 이어졌다. 일도 함께 하면서 공부를 하면 훨씬 더 이해가 잘 될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몇십년 전에 책상에 앉아 공부를 꽤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공부 시늉이었다. 도로 의자에 앉아 버티는 연습을 하려니 좀이 쑤셨다. 하지만 괜히 힘들다는 이유로 선처를 하거나 다른 20대들보다 힘들 거라고 난이도를 조절해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교수님들의 푸시업은 내가 생각했던 한계가 한계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영어가 안 되면, 영어를 배우는 딸들에게 배우면 될 일이었다. 딸들은 내게 발음과 문법에 대해 알려주고 연습을 도와주었다. 백점이 그렇게 맞기 힘든 것인지 그제야 알았다. 예전에는 딸들이 그냥 딸들이었다면, 지금은 기나긴 공부를 함께 해나가야 할 동료가 되었다.
 
 
    내 친구 미순이
  사실 학교에 와서 얻은 것 중 값진 것은 공부나 공부에 대한 의욕 뿐만이 아니다. 학과 특성상 연령대가 다양하다 보니, 단체 대화방에서 서로 눈치만 보기에 바빴다. 그저 공백만 이어지던 와중에 누군가가 자기를 소개하는 글을 올렸다. 놀랍게도 나와 동갑인 79년생인 이미순이었다. 아마 사회에서 만났더라면 그저 업무상 동료로,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게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학교에 지원한 이유나 서로가 가지고 있던 고민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보다 편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이런 인간 관계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자, 이후 점차 다른 연령대에 속한 동기들과도 차차 관계를 꾸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 내게는 한참 불가능해 보였던 20대의 동기들 역시 하나의 인맥이 되었다. 무작정 학업적으로 부족한 부분에만 도움을 요청하게 될까봐 조금 눈치가 보였지만, 최대한 나도 노력하겠다는 마음으로 마주하게 되다 보니 같이 발표를 준비하거나 공부를 할 때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동기 뿐 아니라 선배들과의 관계도 내게는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내게는 어린이집을 차리고 싶다는 꿈이 있었지만, 늘 막연하게만 느껴졌다. 학과 선후배간의 교류에서 만난, 어린이집 원장이라는 선배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보육 교사 자격증이나 어린이집에 대한 이야기 등, 조금씩 가닥이 잡히는 걸 느꼈다. 물론 아직 1학년이고, 갈 길은 한창 남았지만 내 곁에는 나를 지지하고 이해해 줄 동료이자 동갑내기 친구가 있다. 지금은 가닥에 불과한 꿈일지라도, 끈기있게 조금씩 모으는 걸 지켜보고 응원해 줄 친구, 그런 친구가 있어서 오늘도 꾸준히 실들을 한 가닥씩 모아본다. 언젠가는 이 가닥들은 멋진 실타래가 되고, 그 실타래로 멋진 목도리든 장갑이든 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