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분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다 아프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연령대나 아픈 곳은 다 다
르다. 노인도 있고 나와 동갑내기 환자, 가끔 쩔쩔 매게 되는 어린 아이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그들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게 전부였다. 아주 잠깐의 위안일 뿐, 그들
을 치료에 전념할 수 없게 만드는 문제점들은 손조차 댈 수 없었다. 쉬이 공감한다손 치
더라도 문제였다. 정작 그들을 도와줄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가슴은 미어졌다. 메르스
가 한창 돌던 때, 중환자실에 교통사고를 당한 어린아이가 입원해 있었다. 아이는 사경
을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중환자실 면회 시간은 고작 이십 분에 불과했다. 환자의 안전
을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아이 곁에 몇 분만이라도 더 붙어 있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무
시할 수 없었다. 나는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들에게 몇 분이라도 면회 시간을 더 줄 수
없는지 간청했다. 사실 몇 분에 불과하지만, 다른 중환자실 면회객들을 생각해보노라면
흔쾌히 허락할 수만도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애타게 부탁한 끝에 아이의 부모는 십
분 더 아이 곁에 있었다. 고작 십 분, 무려 십 분. 내 손을 붙든 채 고맙다고 우는 아이의
부모를 보면서 어떤 성취감이나 뿌듯함보다는 한없이 슬프기만 했다. 만약 내가 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더 많이 알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렇게 내 한계와
무능을 두고 고심하던 중 병원에도 사회복지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회복지사는
환자가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호자들이 마음을 추스를 수 있게끔 각종 사회 복지
제도들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단순히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 뿐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더해진 결과였다. 환자와 보호자들을 위해 간신히 십 분이나마
만들어냈던 내 마음에, 사회복지사의 지식이 더해진다면 어떨까? 여태껏 넘을 수 없다
고 여겼던 내 한계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켠 김에 끝까지
 사회복지사라는 새로운 길을 찾았지만, 막상 도전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전까지 해
본 적 없었던 걸 새로 도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내 등을 떠민
사람은 바로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이미 마흔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고 활발하게 활
동 중이셨다. 자신보다 더 어린 나이인데도 못할 성 싶으냐며 절대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게다가 명지대하교 미래융합대학 사회복지학과는 직장인들을 위한 제도나
수업이 잘 마련되어 있는 편이었다. 어머니는 가장으로서, 그리고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도 대학을 다녔다. 새벽까지 공부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
고 무사히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 들었
다. 망설이는 내게 어머니는 원체 그 일이 맞지 않았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어머니
가 보는 나는 몸을 움직이고 일을 빨리 빨리 해치우는 데 의의를 두지 않았다. 되레 다
른 사람과 대화하고 공감하려고 애썼고, 도와줄 일이 없는지 물어보는 사람이었다. 먼
저 대학을 간 동생 역시 내게 어울리는 일은 그쪽에 가깝다고 말했다. 여태껏 살아오는
내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인생의 전환점에 서서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있노라니, 생각보다 나는 날 모르는 것 같았다. 새로 시작한 학업
에서 숙제를 빼먹거나 암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어느새 교수님에게 받
은 문법과 단어 프린트를 붙잡고 어떻게든 외우려고 애쓰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남
들보다 앞서겠다는 마음보다는 전보다 한두 개는 더 써보겠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차근
차근, 꾸준히 해나가겠다는 마음 덕분인지 우연찮게 과 부회장을 맡아 많은 걸 배우기
도 했고, 같이 대학에 다닌다는 접점 덕분인지 동생과 조금씩 대화를 트게 되었다. 우리는
함께 치킨을 먹으면서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때때로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
지지와 격려 덕분인지, 새삼 나는 학업의 끝까지 나아가겠노라고 다짐할 수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
친구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덮어놓고 축하해주는 친구가 있는 한편, 주말마
다 만나지 못해 서운해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사회복지사라
는 직업이 열악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통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맡는 업무
에 따라 천차만별로 경제적 여건이며 근무 환경이 다른 편이다. 게다가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사람을 상대하는 만큼 다양한 사람과 만나게 되기는 하지만, 무조건 감정을 착
취당하는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건 사실 고정관념이 아닐까? 어떤 직업이든 낯선 사람
과 맞부딪치는 건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기 때문에 사회복지사를 택한 점도 있었다. 아무리 좋은 제도
가 있고 친절한 사람이 서넛 있다 하더라도 근원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한
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성장기에 남들의 차별어린 시선을 받고 상처를 받는 사
이,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마련이다. 그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지만,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생길지도 모르는 상처를 방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린 귀가 필요하다.
여태껏 한계를 인식하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
기만 했을 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던 내가, 이
제 그들의 이야기를 꼼꼼히 들으면서 조금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자 한계라고 생각했던 우물을 벗어나면,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