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넓은 시선, 더 넓은 복지
사회복지학과 졸업생 김용진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대부분 사람들은 사회복지사의 역할을 요양보호사와 혼동하곤 한다. 제도적인 도움
뿐 아니라 심부름이나 수발도 도맡아 하는, 무조건적 봉사로 이상화한다. 몇몇 안타까
운 소식에 사회복지사를 극악한 직업으로 여기거나, 사회복지사가 근무하는 요양원을
비인간적 처우와 감금을 일삼는 지옥으로 쉽게 왜곡하곤 한다. 그런 편견을 가진 사람
들 대다수는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성원에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고 미래
융합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던 나는 종종 그런 폭력적인 편견과 마주쳤다. 요양원
을 하면 많은 돈을 벌지 않느냐고 묻는다거나, 요양원을 비인간적인 처사나 감금 정도
로 여기면서 은근한 비난을 일삼을 때마다 나는 참지 않았다. 요양원에서 나는 수많은
임종을 마주했다. 친해지고 가까워진 분들을 하나둘씩 떠나보내는 건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애써 무덤덤한 표정으로 억눌러 본다 한들, 그 감정들은 언젠가는 터
져 나오게 마련이다. 차라리 요양원 말고 어린이집을 하는 편이 나았을 거라고 농담처
럼 말한 적도 있었다. 그 역시 힘들 테지만, 적어도 죽음보다는 졸업이 훨씬 더 받아들
이기 쉬울 것이다. 편견은 그 논리적 허술함에 비해 쉽게 우리 뇌리에 단단히 박히곤 한
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나는 학교 안에서 논쟁을 피하지 않았고, 학교 바깥에서는 조율
과 협상을 위해 끈기 있게 설득했다. 사회복지사는 복지 제도에만 능통한 게 아니라 노
동법과 민법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어떤 모순과 갈등을 빚을지 예상할 줄 알아야 한다. 자칫하면 도와주려고 나선 시도들이 모두 무산되고 복지 대상자조차 곤란해질 수 있다.
사회복지사의 무능함은 당사자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는 무
능한 사회복지사만은 되고 싶지 않았다. 수없이 죽음을 마주할수록, 사람들의 인식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발견할 때마다 유능해지고 싶었다. 경험과 동시에 전문적인 지식
을 함께 쌓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일이 밀어닥치는 와중에도 미래융합대학
사회복지학과에서 학업을 쌓기로 했다.
사각 지대조차 없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약으로 함께 내세우는 사회복지 제도도 함께 바뀌게 마련이
다. 사회복지사는 제도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바뀌는 제도들을 파악하고 최대한 많
은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회복지가 절실한
곳일수록 한 가지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문제 상황과 갈등이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사회복지사는 노인들뿐 아니라 아이, 장애인까지 복지 제도의 도움이 필
요한 곳이면 어디에서든 나서야 한다. 그런 만큼 자격증 하나에 한정된 지식이 아니
라 다양한 복지에 대한 배경지식과 인식이 필요하다. 사회복지사의 수는 한정되어 있
지만, 고령화 사회와 맞벌이 부부의 증가 등 여러 사회적 제반 조건의 변화 때문에 서
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역 사회 네트워크를 통
해 요양원의 노인들과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이 함께 피자를 만들어 먹는 연계 복지 프
로그램을 시도해 본 바 있었다. 각 복지기관의 협력을 통해 노인들의 외로움을 해소하
는 한편 아이들에게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회 복지의 대상자
를 물질적으로 부족하거나 사회로부터 버려진 사람이라고 쉽게 판단하곤 한다. 그러
나 이는 극단적인 편견에 불과하다. 사회 복지는 누구에게든 필요한 것이고, 이를 받
아들이지 못한다면 결국 제도로부터 스스로 소외시키는 셈이다. 경험이나 인식은 있
었지만, 만약 사실 대학에서 다양한 복지 환경들이나 상호 네트워크의 사례들을 접하
지 않았더라면 노인과 아이들의 상호 복지 프로그램을 쉽게 시도해 볼 수 없었을 것이
다. 그리고 전문적인 지식을 제반으로 쌓은 덕에, 나는 지역 사회 협의체와 협회의 임
원으로, 그리고 동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협력 사업을 구축하는 등 차차 사회복지
사로서 입지를 다져갈 수 있었다.
행복을 아는 사람이 행복을 준다
사회복지사는 사람에 대해서 많이 알아야 한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상대방의 언어에
서 심리까지 파악하기란 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가령 요양원에서 모시는
어르신들은 가슴의 통증을 배가 아프다는 말로 표현한다. 경험이 없다면 과연 이 말을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론 역시 중요하다. 복지의 수요는 늘어나고 있지만, 막상 복지 인프라는 안정적으로 구축되어 있지 않다. 복지 제도 하나만이 아니라 다
양한 가치를 지닌 법과 사례들이 부딪치느라 무엇 하나 원활하게 굴러가는 법이 없다.
장기요양법과 노동법의 충돌이 대표적인 사례라 들 수 있다. 요양원에서는 비상사태를 대비해 사람들이 24시간 내내 대기하고 있어
야 하지만, 막상 장기노동법의 노동자 권리와 충
돌할 때가 많다. 장기요양의 만족도가 약 98%라
는 점은, 요양원에 대한 편견이 잘못되었다는 점
을 지적해주고 있기도 하지만 요양보호사와 사
회복지사의 노동이 그만큼 필요할 수밖에 없다
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기도 한다. 편견과 오해들
은 이미 힘든 이들의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절망
에 빠뜨린다. 하지만 남녀노소 불문하고 복지 서
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심적 여유가 없다
면, 제대로 남을 보살필 수 없는 법이다. 나는 서로 만나서 고충을 공유하고 힘든 마음
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몇몇 사람들
과 분기별로 만나 그간의 노력에 보상하듯 즐거운 자리를 가지고 있다. 복지는 결국 모
든 이들의 행복을 추구하는데, 행복할 틈 없이 맘이 바쁘고 산란한 사람이 어떻게 복지
를 행하겠는가? 곳곳에 관심의 눈길을 주는 것 역시 이런 여유가 없이는 안 되는 법이
다. 최근 딸아이의 친구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대학에서 배웠던 미술 치료와 미술 심리
상담을 간간이 해주고 있다. 사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미처 보지 못했던, 가장 가까이 있
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 기뻤다. 그
럴 여유조차 없어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면, 딸아이의 친구들은 계속 오해받았을 것이
다. 그리고 나 역시 아동 심리상담에 관한 학술적 호기심을 발견하지 못했을 테다. 우리
는 상대방의 행복만 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역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 그런 행복은 좀 더 많은 것을 조망할 수 있는 넓은 시야에서, 복지의 빈틈을 발견할
수 있는 노련하고 여유로운 판단에서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