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는 삶
사회복지학과 2학년 박려숙
결혼 전 나와 내 남편이 될 사람과의 데이트 장소는 주로 역전 포장마차였다. 우리는
굶기를 버릇처럼 하는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곤 했다. 고아원을 운영하자는 이
야기도 있었지만 실제 생활은 우리 둘이 살아남기에도 버거울 만큼 힘들었다.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묘한 죄책감이 남아 있었다. IT 회사에 다니면서
자리를 확보하고 차차 입지를 굳혀 나갈 즈음이었다. 회사에서는 내게 복지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했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마
음이 원하고 몸으로 뛰어다닌들 절차와 구조를 알지 못하는 한 다 헛수고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나는 사회복지학과 대신 창의융합인재학부에 지원했다. 요양시설이니 당연
히 사회복지학과를 하루라도 빨리 전공하는 편이 낫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
나 나는 늘 심리치료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양자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 입학
설명회에서 창의융합인재학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우리는 어떤 목적을 세우면 으레 정해진 대로 빨리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그 목적하는 바가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는지 정확히 살펴보아야 섣부른 선택으로 인한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나는 내가 바라는 요양원의 모습은 사회복지학과가 아닌 심리치료학과에서 충당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친정 어머니께서 주야간보호센터와 간병인을 거치면서 요양원
에 가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우리 가족은 결사 반대를 외쳤다. 당시 요양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널리 퍼져있었거니와 어머니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사코 요양원을 고집하셨다.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어
머니가 계신 요양원에 찾아갔다. 예상과 달리 어머니는 요양사 선생님들과 즐겁게 대
화를 나누셨고 깨끗한 옷에 정갈한 식사를 하고 계셨다. 사회생활로 바쁜 우리들이 못
했던 효도를 다 받고 계셨던 것이다. 한결 마음은 가벼워졌지만 그렇게 요양원을 오가
면서 나는 어떤 풍경을 목격했다. 바로 부모님들이 자식을 보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다. 쾌적한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자식에 대한 정만큼은 끊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가
슴이 아렸다. 심리치료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사회복지학에 관한 전문
적인 지식도 필요할 테지만 요양 시설은 필연적으로 가족과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현재 요양 시설에서 지내는 사람이나 보낸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을 기회일 것이다.
물론 다시 대학에 다닌다는 것은 직업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피로뿐만 아니라 놓고
있었던 공부를 제대로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을 유발했다. 암기 과목을 공부하거나
영어로 말하는 것도 어려웠고 레포트는 몇 줄 쓰다가 지우기를 번복했다. 그러나 누군
가에게 무작정 기대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교수님이 하시
는 말씀을 전부 다 받아적었다. 그리고 다 쓴 레포트를 몇 번씩 훑어보면서 고쳤다. 성적은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내가 끝까지 이 학기를 완주할 수 있었다는 점을 더 가치
있게 여겼다. 이런 나를 두고 몇몇은 용기가 대단하다고 했다. 어쩌면 내 성격이 유독
긍정적인 쪽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예전에 위험한 상황에 놓였던 한 여자애를 본 적이
있었다. 분명 나 역시 그 남자들에게 해를 당할 만 했는데도 갑작스레 솟아난 용기와
기지로 그 여자애를 구할 수 있었다. 만약 그 여자애를 두고 모른척 지나쳤더라면, 난
얼마나 많이 후회했을까? 그리고 그 여자애는 어떻게 되었을까. 누군가를 구하고 도
와준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을 돕고 구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로써 나 자신을 긍
정하고, 내가 미지의 영역으로 뛰어들 때 얼마든지 살아남아 저 푸른 바다를 자유로이
누빌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를, 그리고 나 자신을 돕기 위해
이곳에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