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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제목 2015년도 수상작: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작성자
작성일자 2018-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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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사회복지학과 2학년 윤종순   






1967년, 2남 4녀 중 넷째로 씩씩하게 이 세상을 향해 신고식을 치루었다. 적지 않은 식구들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바로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던 유년시절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인문계를 갈 것인가? 상업고등학교를 갈 것인가? 선택의 여지없이 상업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었다. 결국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해 빨리 돈을 버는 것이 내 삶의 목표가 되었다.
 
8년 동안 사회생활을 마무리하고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키우다 보니 2012년 8월 고 3인 큰아들 대학 입시 문제로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가며 한 해를 보냈다. 결혼 후 두 아이를 키우느라 10년간의 육아 전쟁을 치르고, 우연히 공인중개사 공부를 시작하여 새로운 직업에 뛰어 들어 잠시 여유를 즐겼다. 여상을 졸업한 후 8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가 보지 못했던 길. 대학생활에 대한 아쉬움은 가슴 한 구석에 묻어 두고 있었다. 그러다 사회복지사 학점은행제도가 내 눈에 띄었다. 학점은행제를 알아보던 중 명지대학교 재직자특별전형 모집을 발견하였고, 학부 생활을 할 수 있는 명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재직자특별전형의 문을 과감히 두드리게 되었다.
 
대학생활 첫 날,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었던 우리 사회복지학과의 자기소개 시간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다른 학생들의 자기소개를 들으면서 나는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생각했다. 나는 과감하게 내 아들은 '인(IN) 서울'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지만 엄마는 그 어렵고 어려운 '인(IN)서울' 대학입학에 성공했다는 자부심이 있고, 그런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들이 있다고 공개했다. 학우들에게는 그 내용이 각인이 되었는지, 그 날부터 나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나의 영원한 동지이자, 내 장학금 재단인 남편은 내가 대학에 다닌다고 했을 때 단순히 일주일에 2번 학원을 왔다 갔다 하듯이 생각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의 대학 생활은 그렇게 헐렁하게 시작하지 않았다. 대학교 2학년인 큰 아들보다 더 바쁘고 재미있게 보냈다. 처음 명지대학교 학생증을 받았을 때는 남다른 기분이었다. 도서관에 갈 때도 자랑스럽게 학생증을 체크하면서 들어갔다. 사회복지학과 점퍼를 입고 단체 MT를 갔을 때의 그 기분은 나를 20대로 돌려났다.
 
1학년 과목 중 ‘인간행동과 사회환경’ 과목을 배우면서 이런 수업은 사회복지학과 학생만이 아닌 모든 대학생들이 꼭 배워야 할 필수과목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대학생 때 배우지 못하였다면 예비 신혼부부들에게 꼭 필요한 수업이라고 생각했다. 나만 배워서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학문이었다. 교양과목 ‘발표와 토의’시간에는 자유로운 주제로 5분 스피치 시간이 있었다. 떨렸지만 학우들 앞에서 잊지 못할 발표의 시간을 가졌다. 대학이라는 곳을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과연 이런 시간들을 체험할 수 있었을까? 대학 나온 사람과 대학을 다니지 못한 사람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렇게 말했던 내가 대학을 다녀보니 내 눈에 그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학 첫 영어회화 시간. 원어민 교수님께서 들어오셨다. 영어회화를 한다는 것도 굉장히 큰 도전이었는데 교수님도 원어민이셨다. 첫 2시간 30분이 어떻게 지났을까? 그래도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 무사히 한 학기를 행복하게 마칠 수 있었다. 첫 인터넷 수업이었던 ‘인간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은 나의 시험 성적이 또렷이 숫자로 표시되는 과목이었다. 역시 공부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방학이라는 아주 달콤한 생활로 돌아왔다. 학기 중에는 쉬고 싶어서 언제 방학을 하나 기다렸지만, 막상 방학을 하니 학우들과의 수다도 생각나고 가방 메고 홍대를 지나가는 등굣길도 생각이 났다. 방학도 잠시 눈 깜짝할 사이 개학이 눈앞에 다가와서 1학년 2학기가 시작되었다. 채플을 시작으로 다시 한 번 파이팅을 외치며 시작된 2학기였지만, 영어의 수난시대는 2학기에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배움의 즐거움은 내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2학기 인터넷 수업 중 ‘한국전통문화의 이해’라는 교양 과목은 궁궐 이야기를 통해 조선의 한 역사를 보여 주는 등 인터넷 수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알려 주었다.
 
학교 축제에서 우리 사회복지학과는 1학년을 중심으로 주점을 이끌어 나갔다. 너 나 할 것 없이 선배님들과 모두 손을 보태고 도와가며 행사에 열심히 참여했다. 아줌마들의 저력이 이럴 때 더욱 느껴지는 것 같았다. 10월에는 재직자특별전형으로 합격한 세 학과의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학술대회를 가졌다. 우리 사회복지학과와 함께 부동산학과와 법무정책학과 학생들이 모여 강의도 듣고 발표에도 참여하면서 다른 학과와 즐겁게 교류하였다. 11월에는 사회복지학과 제 1대 학생회 조직을 위한 투표가 진행되어 2015년 학생회의 틀을 만들었다. 어떤 조직이든 대표 협의체가 있어야 힘이 나듯이, 드디어 사회복지학과에도 학생회가 시작되었다.
 
어느덧 1학년 2학기를 마무리 할 시간이 되었다. 지난 1년간 큰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군대에서 토요일에 부모초청 행사가 있었지만, 아들은 부대 선임들에게 엄마의 토요일 학교 수업으로서 부득이 참석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니 ‘너희 엄마 대단하신 분이다.’라며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 순간 아들도 엄마가 너무 자랑스러웠다고 한다. 내가 열심히 공부해야할 또 하나의 목적이 생긴 것이다.
 
2015년 2학년 1학기, 벌써 2학년이다. 일을 하면서 학업을 병행한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힘들 때마다 ‘함께 가면 멀리 간다’라는 사회복지학과 표어를 생각하며 학우들과 파이팅하며 1년을 보냈다. 고등학교 동창들은 나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대학 다니니 좋으냐는 물음에 ‘너희들이 내 맘을 알까? 알고 싶으면 너희들도 도전해 보라’고 용기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그 느낌을 느껴 보라고 거들먹거린다. 친구들에게 2015년 수시모집에 도전하라고 감히 당당히 말하고 다닌다.
 
드디어 후배들이 생겼다. 새로운 대학생활 시작인 후배들을 보면서 작년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후배들에게 잘 해줘야지 마음을 다져본다. 2학년이 되면서 사회복지학과 학생회 홍보국에서 일하게 되었다. 학교만 다니면 되지 왜 귀찮게 학생회 일을 하느냐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에겐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무나 해 볼 수 있는 경험이었지만 선택은 내가 했다. 우리 아들도 못해 본 학생회 일이다. 아들은 엄마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학우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무슨 일이든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 보라고 후배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학기가 지나면 지날수록 기간은 짧아지고 있었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듯이 내 앞에 놓인 시간을 효과적으로 잘 이용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남은 2년 6개월, 알차고 보람있게 보내어 졸업식 때 친정 엄마 머리 위에 학사모를 씌어드리고 사진 찍을 날을 기대해 본다.